서론
빈센트 반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의 준데르트(Zundert)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개혁파 목사였다. 반 고흐의 풍경화는 아를에서 함께 작품 활동을 한 고갱(Paul Gauguin, 1848-1903)의 풍경화와도 달랐다. 반 고흐의 풍경화는 확실히 이들과 구별된 반 고흐만의 특징들이 있었다. 반 고흐의 풍경화에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에서 나타나는 자연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 고흐의 풍경화는 루소와 밀레의 풍경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의 평온함이나 아름다움이 덜 드러난다.
나아가 반 고흐의 풍경화에는 그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 흔히 등장하는 파리의 풍경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 고흐의 풍경화의 특징은 색채나 기법이 아닌 소재에 있었다. 그는 스쳐 지나가면 보이지 않을 풍경들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덤불, 나무뿌리, 모래언덕, 잡초, 숲속의 잡목과 같은 것들을 화폭에 담았다. 반 고흐가 그린 풍경화들은 대부분 아름다움과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그가 이렇게 무엇인가 결핍된 그리고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풍경들을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 오늘은 반고흐의 생애에 걸친 화풍의 변화를 통해 그의 마음을 공감해보고자 한다.
1. 네덜란드 시기(1881-1885)
고흐가 화가로 입문한 시기로, 어두운 색조 속에서 농민의 삶을 깊이 있게 그렸다. 대표작 '흰 모자를 쓴 여인의 두상(1885)’은 ‘감자 먹는 사람들’의 등장인물 중 한 명으로, 고흐가 농민의 삶을 진솔하게 표현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습작했던 과정을 보여준다. 농민 화가’로서의 반 고흐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작품, 농촌과 농민의 삶에 깊은 애정을 품고 그들의 삶을 화폭에 담았던 반 고흐는 초기 대표작 ‘감자 먹는 사람들(1885)’ 등을 통해서는 동시대 화가들과는 다른 시선과 철학을 가졌던 열정 넘치는 청년 화가를 만날 수 있다.
| 13세의 반 고흐 |
| 동생 테오 |
‘직기와 직조공(1884)’은 당시 노동자의 삶과 인간애에 대한 고흐 특유의 깊은 연민을 담고 있다. 이 밖에 그동안 잘 소개되지 않았던 드로잉(소묘)과 석판화도 전시된다. 특히 ‘감자 먹는 사람들’ 석판화 습작에서는 고흐의 초기 예술적 열정을 확인할 수 있다. 반 고흐가 그린 인물화의 주인공들은 주로 광부와 직조공 그리고 농부들과 같은 소시민이었다.
약한 자들에 대한 반 고흐의 관심은 그의 풍경화에서도 나타난다. 반 고흐는 그가 노동하는 사람들을 화폭에 담았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풍경화를 그릴 때 무엇인가 부족한 경치를 화폭에 담았다. 반 고흐가 그린 풍경화들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에 의해서 이름 없는 풀, 덤불, 나무 밑동, 풀뿌리,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1885년 작품 '감자먹는 사람들'은 감자로 한끼를 때우던 가난한 농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고흐의 초기 회화들 가운데 비교적 큰 사이즈에 여러 사람을 그려 넣은 최초의 그림이었다. 이무렵 반고흐는 밀레처럼 농촌의 애환을 그리는‘농민화가’가되고싶어했다. 그러한 초라하고 빈한한 농부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그림에 진실을 담으려 했던 것이다.
| 감자먹는 사람들(1885, 반고흐미술관) |
2. 파리 시기(1886-1888)
파리에서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를 접하며 화풍과 색채가 밝고 다채롭게 변모한 시기다. 대표작 ‘자화상’은 밝은 색감과 짧고 역동적인 붓 터치로 그의 예술적 전환을 뚜렷하게 보게 한다. 이 시기 그는 꽃 정물화를 통해 강렬한 색채 대비를 실험했으며, 일본 우키요에 판화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구도와 선을 시도했다. 동생 테오가 있는 파리로 이주하면서 그의 작품은 급격한 변화를 겪습니다. 인상주의와 신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밝은 색채와 점묘법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일본 판화(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아 평면적인 구도와 강렬한 색채 대비를 시도했습니다.
|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1888, 코톨드 미술사학과갤러리) |
3. 아를 시기(1888-1889)
남프랑스 아를에서 강렬한 색채와 정서적 표현을 통해 예술적 절정기를 맞은 시기다. ‘씨 뿌리는 사람(1889)'은 밀레의 작품을 재해석 한것으로, 노란 태양과 보라색 땅의 파격적인 색채 대비를 통해 삶의 순환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담아냈다. 이 시기 대표작으로는 ‘해바라기’, ‘고흐의 방’, ‘밤의 카페 테라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등이 있다.파 리 생활에 염증을 느껴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난 시기입니다. 이 시기 고흐는 따뜻하고 강렬한 남프랑스의 햇살을 화폭에 담으며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확립했습니다. 강렬한 노란색을 많이 사용하고, 물감을 두껍게 칠하는 '임파스토' 기법을 통해 대상의 질감과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 파리오르세미술관) |
4. 생레미 시기 및 오베르쉬르 우아즈 시기(1889-1890)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고흐가 예술을 통해 자신을 치유하며 걸작을 탄생시킨 시기다. 대표작 ‘슬픔에 잠긴 노인(1890)’은 고흐 자신이 겪었던 고통과 절망을 강렬하게 표현하여 깊은 여운을 준다. 또 하나의 대표작 ‘착한 사마리아인’은 인간의 자비와 고통이라는 본질적 주제를 강렬한 색채로 표현했다. 이 시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걸작 ‘별이 빛나는 밤’, ‘붓꽃’, ‘사이프러스 나무’ 등을 제작한 때이기도 하다. 정신 질환으로 고통받던 시기이지만, 동시에 그의 예술이 절정에 달했던 때입니다. 소용돌이치는 듯한 역동적인 붓 터치와 강렬한 색채를 통해 내면의 격정적인 감정을 표출했습니다. 생애 마지막 약 70일간, 고흐는 마을과 자연 풍경을 소재로 폭발적인 창작 활동을 펼쳤다. 대표작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은 그의 후기 정서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자연의 광활함과 고흐 내면의 고독, 삶을 향한 마지막 위안과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이 시기 작품은 고흐 예술 세계의 마무리로서 강렬한 감정과 평온한 수용이 공존한다.
| 아이리스(붓꽃, 1889, 폴게티뮤지엄) |
5. 반고흐의 생애와 비극
네덜란드 출신의 반 고흐는 1880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다가 파리로 이주해 1888년에 프랑스 남부 지역인 아를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아를에서 200점 이상의 작품을 남기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신경질환과 우울증 등에 시달렸고 그는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르며 정신 이상증세를 보여 병원에 수감되기도 했다. 이후 파리 근교의 오베르쉬르우아즈로 이주해서 작품 활동을 이어갔지만, 결국 1890년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며 짧은 화가인생을 마무리했다.
| 반 고흐 미술관 |
그는 비록 10년 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850점이 넘는 유화 작품과 1,000점이 넘는 소묘, 150여 점의 수채화 등의 작품을 남겼다. 고흐가 죽은 후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상속되었던 작품들을 바탕으로 1973년 고흐를 위한 미술관이 건립되었다. 고흐의 예술가로서의 생애를 시기별로 나누어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단계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고흐의 작품이외에도 고갱, 밀레를 비롯한 인상파, 후기 인상파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결론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감상한 후기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선 깊은 감정적 울림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죠. 그의 작품은 그림을 그리는 기술적인 요소뿐 아니라, 그가 느꼈던 고독, 열정, 불안, 그리고 희망까지도 생생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임파스토 기법이 잇죠.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본 사람들은 종종 물감이 캔버스 위에 두껍게 쌓여 있는 임파스토 기법에 놀라움을 표하는데요. 마치 조각처럼 튀어나온 물감의 덩어리들은 평면적인 그림에 생동감과 질감을 불어넣어,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손으로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킵니다. 고흐의 작품은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한 예술가의 기록이자, 동시에 인간의 내면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한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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